우리동네 이야기

February 24th, 2008  |  Published in Uncategorized  |  2 Comments

난 어렸을 때 부터 역삼동에 쭉 살아왔다. 태어난 건 마포구 였지만 태어나고 나서 얼마 안되어서 강남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그때 당시만 해도 강남은 별 볼일 없는 동네였겠지. 아파트도 영동아파트라고 옛날 주공아파트 단지 같은거 진짜 쪼그만 데서 살았다. 그리고…아마 중학교 3학년인가 쯤에 개나리 아파트라는 데로 집을 사서 오기 전까진 거의 2년에 한번씩 전세집 전전하면서 이사를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는 이사를 하도 자주 해서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고, 이사라는 것도 원래 해야되는 거구나…라고만 생각하고 살았다.

처음 집을 샀을 때가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였으니…부모님이 결혼하고 15년 정도 지나서야 내집마련이란 걸 하신 것이었다. 난 자라오면서 우리집이 엄청까지는 아니지만 꽤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왔던 걸로 생각을 했다. 왜냐면…친구들 집에 놀러가보면 전부는 아니었지만, 대부분 집도 크고 잘 사는 집 아들들이었으니까…강남…그것도 8학군이니 유명하지. 고등학교때…그땐 유학이 뭔지도 몰랐던 때였는데도 한반에 유학가기 시작한 친구들이 꽤 있었으니까….뭐 끼리끼리 논다고 진짜 친한 친구는 비슷하게 가난한 친구들과 자주 놀았던 것 같다. 웬지 걔네들이랑 나랑은 좀 다른 환경에 살아왔던게 너무 티가 났거든. 잘은 모르겠는데 아마 중,고등학교 때 쯤에서 강남 땅부자들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아님 원래 좀 사는 애들이 강남으로 오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고. 생각해보면 우리집도 그렇게 없는 것 없이 나름 잘 살아왔는데도…주변이 워낙 잘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걸 못느끼고 살았던 듯 하다.

그리고 나서 우리집이 처음으로 잘 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대학교 다닐 때 였던 것 같다. 처음으로 동네를 벗어나서 전국에서 몰려온 아이들이 있는 대학이란 곳을 갔으니까. 학창시절엔 친구들 사이에서 돈얘기를 하거나 집안이 어떻게 살고 뭐 그런 얘기는 사실 노골적으로 하지는 않았었는데, 대학교 들어가고 나서부터 친구들끼리 만나면 주로 하는 얘기가 그런 것이었다. 물론 친구들끼리 장난처럼 하는 얘기인데…결국은 다 돈 얘기다. (이건 사실 그때 이후로 아직까지도 그런다. 회사에서도 농담으로 누가누가 잘사네, 갑부네, 그러면서 부르조아, 프롤레타리안 농담따먹기를 하고(원래의 의미가 퇴색되긴 했지만, 그냥 돈 많으면 부르조아다 -_-; ), 대학때도 그런 농담으로 제일 재밌게 놀았던 것 같다. 사실은 별로 재미가 없어야 되는 얘기이고 꺼려야 하는 얘기임에도 불구하고…참 아이러니하다.)

난 소위 ‘강남’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무슨 갑부집 아들내미나 된 것 처럼 친구들 사이에 놀림감(물론 심하게는 아니고)이 되곤 했었다. 참 인정하기 뭐하긴 했지만 시시콜콜 이런 우리집 사정을 얘기하는 것도 오바니까 그냥 장난으로 받아 넘기고 그랬었다. 그렇다고 기분 나쁠 것 까진 없었지만…뭐랄까 학창시절 내내 가난한 축인줄만 알고 살았었는데 갑자기 부자집 아들로 탈바꿈되어서 낯설었다고나 할까… 뭐 가끔 좀 짜증날 때가 있긴 하다. 입사하고 첫 회식이었는데…신입사원이라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한참 술을 받아 마실 때였다. 누군진 모르지만 아무튼 아버지뻘 되는 선배님이 술을 따라 주시면서 ‘그래 넌 어디 사냐?’ 그래서 ‘네..역삼동 삽니다’ 그랬더니…다짜고짜 ‘아, 부르조아 자식이구만?’ 그러면서 옆 동료분하고 어찌나 까대시는지…역삼동 살면 다 부르조아냐 ㅆㅂ.

그런데, 역삼동에 20,30년 전부터 쭉 살아온 사람들은 현재 먹고 살만 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자신이 제일 못살고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실제로는 나름대로(내가 보기엔 평균 이상인 것 같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음에도, 마음은 한없이 가난한 것 같다.

나는 성당을 다니는데, 성당은 알다시피 지역 교구제로 되어있어서 동마다 성당이 있고 헌금을 모으면 같은 지역구 내에서 돈을 합산하고 동에서 구로, 구에서 시로 헌금을 합쳐서 올리는데, 역삼동이면 그래도 강남에서 잘 산다고 소문난 동내이긴 하지만 걷히는 헌금액수는 다른 동네보다 크게 낫지 않다고 들었다. 잘 사는 것 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마음의 여유는 하나도 없고, 베푸는 것에도 인색하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하지만 마음이 참 가난한 동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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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ponses

  1. purpleb says:

    February 24th, 2008 at 9:29 am (#)

    대공감. 마포에서 강남 이사온 것까지 저랑 같다는 ^^

  2. HJAZZ says:

    February 24th, 2008 at 3:47 pm (#)

    오호~ 정말?? 신기하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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